소장음원자료 시리즈

전통음원 <소장음원자료시리즈 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김명환의 호는 一山으로 많은 山 가운데 우뚝 선 山을 뜻한다.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명창 임방울과 함께 판소리를 했는데 이때 얻은 아호라고 한다. 김명환 자신은 이 아호에 대해 좀 튀며 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참으로 그분의 성품과 잘 어울리는 아호라고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기쁨이 극치에 이르고 신이 복받치면 북을 친다. 억양된 심정을 조율하는데나 고양시키는데는 식상인 것이 북이요, 그래서 북과 친근한가 보다. 옛날 영고라는 축제의 이름이 보이듯이 북은 역사적으로도 한민족과 친근하다. 또한 북은 용도에 따라 모양과 종류가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성악곡 가운데는 북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판소리가 있다. 판소리 역시 세 가지 음악적 요소인 성음·음계·장단(리듬)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포괄적인 예술이기에 재미있게 전해 오는 말들도 많이 있다. 특히 북을 치는 고수의 관한 이야기로 전하는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명고는 없다”, “보비우” 서양음악에서 얘기하는 지휘자 등 고수의 다양하고 중요한 역할들을 얘기하고 있는바, 명고수란 모두 기교가 아닌 폭넓은 예술적 체험과 철학적 바탕을 통해서 얻어지는 판소리 고법의 최고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이 모든 예술 세계를 겸비한 명인이 곧 김명환이다. 김명환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고집스런 성격으로 16시간이나 북을 친 적도 있듯이 끈기 있는 노력형에다 타고난 음악성,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이다. 김명환은 갑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좋은 환경으로 인해 그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례비를 내고 북 학습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기에 장판개·박판석·주봉현·공창식·김정문·김봉학·박중근·신창문 등 많은 명인들에게서 북을 치는 자세, 수법, 이론 등을 사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익힌 북 학습으로 훗날 판소리 고법이라는 명칭은 물론 개념, 고수의 중요한 역할까지 알리는 계기로 66세에 최초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 고법’ 보유자로 지정받게 된다. 명고수 김명환은 명인 명창들과도 북을 치며 교류하였는바 송만갑·이동백·정응민·임방울·박봉술·정권진·김소희·한애순·성우향·창순·조상현·최승희, 대금의 명인 박종기·한주환·오태석·한승호, 가야금의 인 강태홍·정광수·함동 정월 등 돌아가신 당대의 명인 명창과 현재 생존해 계신 인 명창들과의 교류에서 얻은 판소리 이론과 산조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논리 또한 학문적으로도 인정받고 또 조명 받고 있다. 젊은 시절 장사라고 할 만큼 건장한 체격에 커다란 손바닥에서 울리는 김명환 특유의 북 가락 변주방법,소란스럽지 않고 적시적소에 넣는 간결하고 위엄 있는 독특한 추임새 등은 실로 독보적이라 하겠다. 말년의 김명환은 자신의 고법을 계승한 제자들과 그의 북소리에 가야금산조를 닦은 제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임인 일산회(1981년 조직) 모임을 아주 반기셨다. 선생님 댁이나 제자들의 집에서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여러 제자들과의 실기와 이론의 토론장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내북에 앵길 소리가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슬퍼하고 또한 명고가 나올 수 없음을 한탄하셨다. 두 번에 걸친 담석증 수술 뒤에도 이겨내시던 김명환은 끝내 황달·합병증으로1989년 77세의 일기로 식목일에 별세하여 선산에 묻혔다. 김명환이 남긴 고법 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예술정신은 앞으로 후학들에게 영원히 빛날 것이며 계속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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