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주별 검색 - 민간신앙 등 사회적 의식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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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산별신제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무형문화재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체계적인 기록보존을 위해 1995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화 사업은 보유자(단체)의 기예능을 영상과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록도서 발간을 추진한다. 은산별신제는 충남 부여군 은산 지역의 역사적·사회경제적 기반을 배경으로 전해오는 제의이다. 196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으며, 2002년 차진용, 황남희, 박창규 보유자를 포함한 은산별신제보존회가 은산별신제를 진행하는 과정 및 전승 현황을 남기는 기록화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물인 기록영상과 기록도서에는 역사적 배경, 형성과 전개, 은산별신제의 절차, 구조와 성격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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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재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무형문화재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체계적인 기록보존을 위해 1995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화 사업은 보유자(단체)의 기예능을 영상과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록도서 발간을 추진한다. 영산재란 『법화경』의 설주(說主)인 석존과 그 말씀을 듣기 위해 운집한 영산회상의 모든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영산재는 1973년에 '범패'로 지정되었으며, 1987년에 '영산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3년 김인식 보유자와 보존회원들의 실연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록화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물인 기록영상과 기록도서에는 영산재의 기원과 준비 및 진행과정 등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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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제례 [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무형문화재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체계적인 기록보존을 위해 1995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화 사업은 보유자(단체)의 기예능을 영상과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록도서 발간을 추진한다.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으로, 1975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 2008년 이기전, 이형열 보유자를 중심으로 보존회의 제례 진행 및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록화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물인 기록영상과 기록도서에는 종묘제례의 역사와 제례공간, 구성, 진행과 절차 등이 담겨 있다.
기증/기탁 컬렉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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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안승삼 보유자
    서해안 옹진·연평도 지방에서 선주(船主)가 배와 사공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면서 정월에 지내는 제의를 ‘배연신굿’이라 하고, 마을의 안녕과 번영, 풍어를 기원하여 2~3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행하는 마을굿을 ‘대동굿’이라고 한다. 이 굿은 1985년 2월 1일에 국가무형문화재 제82-2호로 지정되었다. 고(故) 안승삼(安承三, 1909~2007) 보유자는 황해도 해주에서 객주집 아들로 태어났는데, 포구에서 태어나 자라 어릴 적부터 굿판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안승삼 보유자는 굿에서 탈을 쓰고 신명나게 ‘배치기 노래’를 부르는 선주들을 부러워했고, 25세 무렵 직접 뱃일에 나서면서 ‘배치기 노래’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굿판에 대한 관심은 굿당 장식품인 마지(무신도)와 지화로 이어졌고, 당시 황해도 일대에서 굿당 장식품제작에 이름이 높았던 박수무당 고(故) 박영길에게 마지와 지화 제작 기술을 전수받았다. 박영길이 죽은 이후 안승삼 보유자는 황해도굿의 마지와 지화를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고, 1987년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의 배치기 노래와 지화부분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2005년 4월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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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강정희 보유자
    석전대제란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제사의식으로, 문묘대제 또는 석전제(고기를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의식)라고도 한다. 매년 2월과 8월 정해 놓은 날에 공자를 비롯한 옛 성인들의 학덕을 추모하며 지낸다. 198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고(故) 강정희(姜正熙, 1918~1996)는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5세 때 성균관 진사인 석경 김두현 선생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9세 때 4서 3경을 익혔다. 1936년 이후 초중고에서 교편을 잡았고, 서울산업대, 동덕여대 등에서 철학 강사를 하기도 했다. 1959년 내무부 사무관으로 전직하여 서울시의 각 부처 과장직과 용산구청장 등을 역임했다. 1970년부터 약 5년간은 언론사에서 활동했고, 1976년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 전학에 임명되었다. 성균관의 총무처장과 전례연구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석전대제의 전형을 재정립하여 1995년 석전대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각종 대중매체를 이용해 국민실천예절 등 유교문화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향교의례의 합리적인 향상을 위한 석전의례반 교육생을 양성하여 전국 234개 향교 의전 확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시를 즐겼고, 서예에도 능하여 많은 비문과 축시, 문집의 서문, 상량문 등을 남겼다.
공연/전시/교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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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년공연
    남해안별신굿은 국가무형문화재 제82-4호로 지정되었으며, 경상남도 거제도를 중심으로 통영시 일대의 어촌과 한산도, 사량도, 욕지도, 갈도, 죽도 등지에서 행해지는 어촌의 공동제의이다. 제의는 주로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행하여진다. 제물은 메, 떡, 삼색과일, 생선찜, 생선전, 생선포, 나물 등으로 차려지는데 동해안지역에 비하여 간단히 차리는 편이나 각 가정에서 한 상씩 차려와 문밖에 늘어놓은 거래상이 볼만하다. 진도다시래기는 국가무형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전하는 축제식 장례풍속이라는 점에서 각별하게 주목을 받는다. 진도에서는 출상 전에 상가에서 밤샘을 하며 놀 때 다시래기를 연행하고, 출상시에는 북과 장구, 꽹과리를 치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죽은 이를 운상해왔다. 정읍농악은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 7-2호로 우도지역 농악에서 전국적으로 가정 먼저 알려졌고, 해방 이전부터 '정읍농악단'이란 명칭으로 활동단체가 전문적인 연예활동을 전개하며 일찌감치 연예농악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