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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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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
    갓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무형문화재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체계적인 기록보존을 위해 1995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화 사업은 보유자(단체)의 기예능을 영상과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록도서 발간을 추진한다. 갓일은 갓을 만드는 공정 모두를 통칭하며, 각 공정의 장인을 일괄한다. 1964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하였으며, 2001년에 갓 제작 실연 및 인터뷰를 바탕으로 갓일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였다. 강순자 보유자(총모자), 장순자 보유자(양태), 정춘모 보유자와 박창영 보유자(입자)와 함께 갓일 전체 공정을 담아냈으며, 그 결과물로 기록영상과 기록도서에 갓일의 역사, 재료, 제작공정, 전승현황 등이 정리되어 있다.
  • 59
    나전장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무형문화재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체계적인 기록보존을 위해 1995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화 사업은 보유자(단체)의 기예능을 영상과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록도서 발간을 추진한다. 나전장은 나전(자개)을 여러 무늬로 오리거나 끊어 붙이는 장인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칠기장'으로 1966년에 지정되었으며, 이후 1995년에 끊음질 종목과 통합하면서 '나전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5년에 송방웅 보유자(끊음질)와 이형만 보유자(줄음질)의 나전칠기함 제작 실연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록화 사업이 진행되었다. 사업을 통해 제작된 기록영상과 기록도서에는 나전칠기의 역사와 장식기법, 재료, 제작공정, 전승현황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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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모시짜기 [국가무형문화재 제14호]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무형문화재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체계적인 기록보존을 위해 1995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화 사업은 보유자(단체)의 기예능을 영상과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록도서 발간을 추진한다. 한산모시짜기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 일대에서 전승되어온 모시 제직기술을 말한다. 1967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2003년에 문정옥, 방연옥 보유자의 제작 실연 및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록화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물인 기록영상과 기록도서에는 한산모시짜기의 역사, 재료, 제작공정, 전승현황 등이 담겨 있다.
기증/기탁 컬렉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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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故 전덕기 보유자
    고(故) 전덕기(田德基, 1897~1972) 보유자는 제1대 입자장 보유자로 1897년 12월 3일 통영에서 2대에 걸쳐 갓방을 경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세 때에 김의순(金義順) 갓방에 들어가 갓일을 배워 평생을 갓방을 경영하고 제작하면서 살았다. 그가 살았을 당시 충무시(현 통영시)에는 '선창골'을 중심으로 20여개 소에서 갓방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1961년 예용해 문화재위원이 조사할 당시에는 유상윤 갓방과 전덕기 갓방 두 곳에 불과하였다. 이후 그는 갓 만드는 솜씨를 인정받아 67세인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 중 입자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972년 12월 6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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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봉주 보유자
    고(故) 김봉주(金鳳珠, 1903~1977) 보유자는 제1대 입자장 보유자로 1903년 5월 2일 거제에서 태어났다. 17세 때인 1920년 2월에 통영으로 이사하여 문래언(文來彦)에게 갓일을 배웠다. 이후 양대홍 갓방, 한우렬 갓방(1930년 11월부터), 박자근 갓방(1932년 11월부터), 홍진규(洪振奎) 갓방(1933년 10월부터), 전덕기(田德基)갓방(1935년 5월부터)으로 옮겨가며 갓을 만드는 일을 계속 하였다. 그러다 30대가 되어 약 20년 가까이 갓 만드는 일을 하지 않다가 해방 이후 1956년부터 전덕기 갓방에서 수장 일을 보는 직공으로 근무하면서 다시 갓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골배기를 하는 고재구와 함께 작업을 하였으며, 이후 김봉주 보유자는 예용해 문화재위원의 조사를 거쳐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 중 입자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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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고재구 보유자
    조선시대 전통복식에서 선비들이 반드시 격식을 갖추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갓이다. 갓을 만드는 일(갓일)은 세부 과정에 따라 총모자, 양태, 입자로 나뉜다. 옷차림의 변화에 따라 갓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갓일은 일부 지역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보호하고자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고(故) 고재구(高在九, 1897~1979) 보유자는 1897년 3월 30일 통영에서 4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총모자 일을 시작한 것은 15세 되던 해에 권명식(權明植) 총모자 방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그는 이곳에서 100여 명의 장인들과 함께 15년간 일하였다. 그러다가 30대에 북만주로 이민을 가서 20년간 만주 일대를 전전하기도 하고 일본에서 고깃배를 타기도 했다. 해방 이후 다시 통영으로 돌아와 전덕기(田德基, 1897~1972)와 김봉주(金鳳珠, 1903~1977) 갓방에 들어가 다시 총모자에 골배기는 일을 다시 하였다. 그는 닷새면 총모자 1개를 너끈히 결을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이에 예용해 문화재위원의 조사를 거쳐, 67세 때인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 중 총모자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는 1976년 김봉주 보유자가 사망하자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가서 화로를 옆에 놓고 총모자골 위에서 총모자를 겯는 작업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