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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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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 자서전(014) 제34호 강령탈춤 김정순
    김정순(金正順)은 1932년 충청남도 태안군 원청리에서 태어났다. 6살에 고모를 따라 인천으로 간 김정순은 7살에 학교에 들어가려 했지만, 입학을 앞두고 장질부사에 걸렸다. 2년을 앓은 후 영신학원에 입학하여 한글을 깨쳤다. 12살에는 왕십리에 위치한 동명학교에 입학했지만, 무용학원을 다니기 위해 부모님 몰래 학교를 그만두었다. 김정순은 종로에 있는 최승희무용학원에서 이영희에게 무용 기초를 배웠다. 그러나 곧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용을 그만두게 되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꿈이 좌절된 김정순은 광주로 내려가 여군에 지원했다. 고된 훈련을 받고 6개월 뒤에 6·25 전쟁이 일어나 인민군을 피해 인천으로 돌아와 인천에서는 대한청년단에서 훈련대장과 감찰부장을 맡았다. 1952년, 스무 살 나이에 이 연극을 만들다 인연을 맺은 백흥선과 결혼했다. 시집의 형편은 가난했기 때문에 김정순은 인천의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였다. 시장 근처에 민천식이 운영하는 인천국악무용학원을 발견하고, 어릴 적 꿈을 찾아 다시 무용을 시작하였다. 당시 시장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김실자는 학원의 조교 강사로 있었고, 평생 함께 춤을 추며 강령탈춤을 이끌어갔다. 민천식은 김정순에게 타령을 제일 먼저 가르쳤다. 이후, 굿거리춤, 살풀이춤, 장구춤, 승무, 용춤 등 다양한 춤을 하나씩 배우며 무용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민천식은 김정순에게 탈과 무구를 제작하는 방법도 전수하며, 아낌없이 김정순을 가르쳤다. 1967년 민천식이 별세한 후 학원을 물려 받은 김정순은 당시 민요의 대가인 최창남과 이영렬을 초빙하는 등,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탈춤을 배우기 위해 김정순은 김기수를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당시 한창 발굴 중이던 강령탈춤을 소개받았고, 황해도에서 탈춤을 추다가 월남한 오인관과 양소운 등에게 본격적으로 탈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김정순을 비롯한 여러 연희자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복원이 완료된 강령탈춤은 197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고, 김정순은 1976년에 이수자가 되고, 1981년에는 전수교육조교로 인정되었다. 그 기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무대에 오르며 강령탈춤을 알리는 데 온 힘을 다 한 결과, 1980년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김정순은 198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의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보유자가 된 후에도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전국 50여 개의 대학을 돌며, 강령탈춤의 맥을 잇는 데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한편, 그 과정에서 정확한 교본의 필요성을 느끼고 김실자와 함께 기본 춤사위 16개와 기존의 연희본을 종합 정리하여 1989년 『강령탈춤 교본』을 발간하고, 1994년 사비를 털어 충남 안면도 파도리에 강령탈춤연수원을 설립하는 등 전통의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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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mm기록영화
    16mm 기록영화는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하였다. 그 내용을 다음과 같다. 1960 년대 : 1960년대 기록 영화 미상 (충남민속), 한국영화잡지 제28호, 승전무(충무), 전북의 농악, [뉴스] 우리의 문화재, 인간문화재/한국의 춤, 고성오광대, 동래야류, 남사당놀이-5.덧보기(탈춤), 남사당놀이-1.풍물(농악), 2.버나(대접돌리기),남사당놀이-3.살판 (땅재주), 4.어름(줄타기), 양주별산대놀이, 강강술래,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갓일(양태장과 사립장), 남사당놀이-6.덜미(꼭두각시놀음) 1970 년대 : 1970년대 기록영화 종묘대제례, 진주검무, 승무, 강령탈춤, 처용무, 악기장, 처용무, 악기장, 수영야류, 승무, 궁시장, 학무, 차전놀이, 은산별신제, 장군당제 (영어), 은율탈춤, 조각장, 나전칠기 1980 년대 : 1980년대 기록영화 낙죽장, 좌수영어방놀이, 장도장, 끊음질, 밀양백중놀이, 북메우기, 망건장, 나주의 샛골나이, 은산별신제, 하회별신굿탈놀이, 곡성의 돌실나이, 고싸움놀이, 한산모시, 단청, 영산쇠머리대기, 영산줄다리기, 입사장, 제주칠머리당굿, 양주소놀이굿, 양태장, 발탈, 두석장, 갓일, 소목장, 종묘제례, 기지시줄다리기, 진도씻김굿, 영산재, 서해안 배연신굿, 대동굿, 조선왕조궁중음식, 유기장, 궁시장 1990 년대 : 1990년대 기록영화 옹기, 명주짜기와 바디장, 진도다시래기, 가산오광대, 동해안별신굿, 위도띠뱃놀이, 침선장 기타 년대 : 기타 연도 미상 기록영상 자료 경상북도 민속무용, 횡성의 농악, 통영오광대, 미상 (경북민속), 최종수칼춤, 경기산대놀이, 영산민속놀이, 남도들노래, 이조명화, 강강술래, 낙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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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 자서전(016) 제43호 수영야류 조홍복
    조홍복(趙弘福)은 조명윤과 오수남 사이에서 3남 4녀 중 차남으로, 1933년 부산 수영구 수영동 북문외리에서 태어났다. 당시 수영성은 동성 촌락으로, 200호 이상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수영성 근처에 위치한 북문외리 마을은 1800년경 입향조인 조일룡이 함안에서 이거하며 수영 문중을 형성했다. 조홍복은 수영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5년, 해방을 맞이한다. 그러나 곧 1950년대에 접어들며 6·25를 겪게 된다. 징병으로 참전한 형은 한 달도 되지 않아 전사하고, 상심한 아버지가 1952년 연이어 별세하시면서 가족들에게는 그늘이 드리웠다. 조홍복은 전쟁 당시 수영비행장 5공군 경비원에 지원해 약 3년 근무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53년도 6월에 정식 입대 통지서를 받으며 아버지 상중에 21살의 나이로 다시 입대를 하게 되었다. 제주도 제1훈련소로 향한 조홍복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6개월 만에 훈련 날짜를 채우고 육지로 돌아왔다. 곧바로 대전에 통신병으로 배정을 받아 577부대에 1기로 근무하게 되었다. 제대한 직후에는 아내 도말연을 소개 받아 결혼을 올렸다. 이듬해 장남을 얻고, 이후 딸 둘을 낳아 아내와 세 자녀가 있는 가정을 꾸리게 된다. 60년대 초, 조홍복은 가죽공장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4·19 혁명이 발발하여 공장은 문을 닫게 되었다. 모래 파는 일을 하며 조홍복은 자형의 입후보를 도왔으나 곧이어 일어난 5·19 군사정변으로 인해 시의회는 해산되었다. 이 일로 조홍복의 집안은 경제적인 타격을 입으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이후 조홍복은 농협 공판장에서 2년 정도 경비 일을 하며 생활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1965년도에 접어들며, 자금을 확보한 조홍복은 이를 바탕으로 연탄 판매를 시작하였다. 1969년 37세의 나이로 시작한 수영동 북문외리 총무직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1975년부터 1998년까지 수영동 24통장을 역임하기도 하며 마을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46세가 되던 1978년, 조홍복은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에 입회하기로 결정한다. 조홍복은 좌수영어방놀이 보유자 박남수에게 춤을 사사하여 수영야류의 영감 역을 맡게 되었다. 보존회 활동을 하며 창을 배워 좌수영어방놀이에서 12년간 창을 하기도 했다. 조홍복은 1986년 54세에 수영야류 이수자가 되었고, 10년 후인 1996년 수영야류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3호 수영야류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기증/기탁 컬렉션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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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태섭 보유자
    종묘제례악은 조선 왕조를 위한 제향(祭享)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말한다. 악기로 연주하는 기악(器樂)과 노래로 부르는 악장(樂章), 그리고 의식무용인 일무(佾舞)의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1964년 최초 지정 당시에는 각 악기별로 보유자를 인정하였으나, 2001년 이후에는 종묘제례악보존회를 보유단체로 인정하여 전승하고 있다. 고(故) 김태섭(金泰燮, 1922~1993) 보유자는 종묘제례악 태평소 보유자로 이왕직 아악부 양성소 출신이다. 그는 이왕직아악부 양성소에서 피리를 전공하면서 태평소를 배웠는데, 종묘제례악에서는 태평소로 보유자 지정을 받았다. 해방 후 국립국악원에 들어가서는 주로 장구를 연주하였고, 피리는 그의 제자인 정재국(현 피리정악 및 대취타 보유자)이 연주하게 하였다. 정재국의 스승인 그는 제자의 재능을 인정하고 제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준 것이다. 그의 유품 중 피리 구음보, 일본공연 사진, 국악사양성소 졸업앨범은 정재국이 소장하고 있고, 그 외의 많은 유품은 국립국악원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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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천흥 보유자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조선왕조를 위한 제향(祭享)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말한다. 악기로 연주하는 기악(器樂)과 노래를 부르는 악장(樂章), 그리고 의식무용인 일무(佾舞)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처용무(處龍舞)는 통일신라 헌강왕 때 발생한 처용설화를 바탕으로 하는 궁중무용으로 가장 오래된 연원을 지닌 향악정재(鄕樂呈才)이다. 고(故) 심소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은 서울 출생으로 1922년 이왕직아악부의 아악 부원 양성소 2기생으로 입소하여 조선왕조의 악사였던 김영제, 함화진, 이수경으로부터 처용무를 비롯하여 해금과 양금 등 궁중 악가무 일체를 배웠다. 1923년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50세 탄신을 축하하는 연희에서 무동(舞童)으로 춤을 추었는데, 이 때문에 그에게는 ‘조선의 마지막 무동’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사망하기 전까지 국립국악원의 원로사범,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과 제39호 처용무(處容舞)의 보유자로 활동하며 전통예술의 보존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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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수악 보유자
    진주지방에 전해 오는 궁중정재 진주검무는 춤의 연출형식, 춤가락, 칼 쓰는 법 등이 옛 궁중의 그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주목되는데 민속무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궁중의 색채를 지녔다는 것이 특징이다. 고(故) 김수악(金壽岳, 본명 김순녀, 1926~2009)은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여 9살 때부터 진주권번에서 춤, 소리, 악기 등을 학습하였다. 1967년에 중요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1997년에는 경남 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보유자가 되었다. 김수악의 유품은 진주검무와 진주교방굿거리춤의 전수 활동에서 사용된 의상이나 소도구가 주를 이루고, 그 외에 장고, 소리북, 가야금 등의 악기류와 상장, 트로피, 사진 등이 있다. 김수악의 유품은 진주검무와 진주교방굿거리춤의 전수활동과 관계된 것으로 한정되는데, 1997년 진주교방굿거리춤이 지정된 이후에는 진주교방굿거리춤이 주를 이루어 진주검무의 유품은 1970년대로 추정되는 검무칼과 그리 오래되지 않는 쾌자, 전립이 남아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유품이 2009년 작고하기 전까지 사용되던 것이었기 때문에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공연/전시/교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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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명인오마주'탄생100주년'_월하(月荷) 김덕순(2018.10월 토요공연)
    2018 국립무형유산원 토요상설공연 명인오마주_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인간문화재의 예술혼에 경의를 표하는 무대. 한 분야에 몸담고 활동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명인명창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무대. 전무후무(前無後無) 월하 김덕순 (月荷 金德順_ 1918~ 1996)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 공연 프로그램 1. 김월하 명인의 발자취 2. 시창 '십이난간~ ' 창_ 김영기 반주_ 예당악회 3. 영상인터뷰 월하문화재단 이사장,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보유자 김경배 4. 시조 '평시조 청산리 ~ ' 창 변진심 대금 유진희 반주 이건형 5. 김월하 명인의 음반소개 6. 가사 '수양산가' 창_ 황숙경, 강권순 반주 예당악회 7. 김월하 명인 생전육성 8. 가곡 '환계락 사랑은~ ' 창_ 김영기, 이승윤 반주 예당악회 9. 명인대담 김영기(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보유자) 변진심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7호 시조 보유자) 이승윤, 황숙경, 강권순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10. 가곡 '편수대엽' 창_ 김영기, 변진심, 이승윤, 황숙경, 강권순 반주 예당악회 (거문고 강혜진, 가야금 조영재, 피리 여장근, 대금 전인근, 해금 조한결, 단소 안헌영, 장고 이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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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인류무형문화유산 초청공연 : 아시아의 전통인형극
    ▶ 일본 <닌교 조루리 분라쿠 인형극> - 공연정보 : 10월5일(금)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대공연장 - 출 연 진 : 닌교 조루리 분라쿠자 (人形淨瑠璃文楽座) - 공연설명 : 에도시대부터 꽃피워 온 삼위일체 종합예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대표목록 2008년 등재)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전통 무대예술로서, 서민을 위한 성인용 인형극이며 가부키(歌舞伎) · 노(能)와 함께 일본 3대 고전예능분야로 꼽힙니다. 오늘날의 분라쿠는 서사적 노래인 조루리, 악기 샤미센, 인형이 결합된 악극입니다. - 공연내용 : <'히다카가와 이리아이자쿠라' 중 '와타시바노단'> 도조지 설화 내용 중, 키요히메가 히다카강을 건너 안친을 쫒는 장면을 인형극으로 풀어냈다. 안친이 도망치자 키요히메는 끓어오르는 질투심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뱀으로 변해 안친을 쫓게 된다. 이 장면에서 '가부'라고 하는 여성의 얼굴이 도깨비로 변하는 가면과 강을 헤엄쳐 가는 사이 뱀으로 변하는 키요히메의 모습을 인형으로 재빨리 바꾸며 보여주는 등 신기한 볼거리가 넘치는 극이며,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작품이다. ▶ 중국 <푸젠성 인형극> - 공연정보 : 10월6일(토)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소공연장 - 출 연 진 : 천주시목우극단(泉州市木偶剧团) - 공연설명 : 정교한 인형극 예술, 그 맥을 잇는 노력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모범사례 2012년 등재) 줄 인형극과 손 인형극을 연행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공연 예술이며 중국의 푸젠성이 중심도시입니다. 독특한 공연 기술 및 인형 공예와 함께 극(劇)과 음악의 레퍼토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 공연내용 : <소사미하산> 어린 승려의 하산, <약란행> 남편을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 <종규취주> 귀신을 쫓아 사악한 기운을 없애는 끝없는 전투, <명운괴뢰> 운명에 맞서는 이야기, <원소락> 중국인과 외국인들로 구성된 다양한 인형 곡예의 향연 ▶ 인도네시아 <와양 인형극> - 공연정보 : 10월6일(토)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대공연장 - 출 연 진 : 와양 아젠(Wayang Ajen) - 공연설명 : 화려한 인형과 청동악기의 독특한 음색이 어우러진 전통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대표목록 2008년 등재) 자바섬에서부터 유래한 와양은 정교한 인형과 복잡한 형식의 음악으로 구성되며 이야기 구술 양식으로 진행합니다. 시골 지역뿐 아니라 궁정에서도 성행한 와양은 크게 목제인형(와양골렉, 클리틱)과 가죽 그림자 인형(와양 쿨리트) 종류로 구분됩니다. - 공연내용 :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바탕으로 진행되며, ‘라마 왕자’가 ‘라바나’로부터 ‘시타’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모험과 전쟁, 그리고 사랑 이야기입니다.
소장음원자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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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음원자료시리즈 01> 이충선 기악곡집
    이 음반은 국가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49호 송파산대(松坡山臺)놀이의 장고·대금·피리 예능보유자로 활동하였던 이충선의 기악곡 모음집으로 총 3개의 CD로 구성되어 있다. 이충선(李忠善, 1901∼1989)은 경기 무속음악 반주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삼현육각과 산조, 풍류, 대풍류, 무용반주 등에 통달한 예인이었다. 악기도 해금, 피리, 대금, 단소, 양금, 태평소, 가야금, 철금 등 거문고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악기에 능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