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석전

전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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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향교 석전
2016-04-22
충주향교는 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 있습니다. 교현이란 지명은 '향교가 있는 교동'과 '만리산 줄기끝의 야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충주향교는 본래 도신 동북쪽 계명산(옛 심항산)아래에 있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1629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8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재건하였습니다. 향교의 서쪽에는 호성사(護聖祠)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1529년(선조25)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충주향교가 불타자, 당시 충주 읍리였던 석천수와 그의 숙부인 석감은 성현들의 위패를 삼항산(지금의 계명산)으로 옮겨 보존했습니다. 이러한 공을 세운 석씨(石氏) 숙질의 공적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숙종 대에 지방 유림들이 호성사를 건립하고 매년 춘추로 향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 향교(鄕校)는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기 이전 각 지역에 설립된 관학 기관으로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문화를 선도하던 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현대화를 거치면서 전통이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향교 역시 지난 과거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향교는 지역의 오랜 전통을 보여주는 표지석으로서, 약화된 유림사회를 결집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전통을 보호,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향교의 무형적 상징인 석전제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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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향교 석전
2016-04-22
제주향교는 1392년(태조원년)에 이루어져 1435년(세종17)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관덕정 동쪽 교동에 창건한 이래로 총 다섯차례에 걸쳐 이전하여 현재의 용담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제주향교는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의 실시에 따라 향교의 교육기능이 사라지거나 옅어지게 되면서 해마다 봄,가을로 지내는 석전제만을 봉행하는 선현봉사의 기능만을 유지하게 된다. 오늘날 제주 향교는 1971년 8월 26일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면서 국가의 관리와 보호를 받게 되었으며, 향교의 유림들은 지역 주민이나 관광객들에게 좀 더 친근하고 가까운 장소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향교(鄕校)는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기 이전 각 지역에 설립된 관학 기관으로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문화를 선도하던 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현대화를 거치면서 전통이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향교 역시 지난 과거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향교는 지역의 오랜 전통을 보여주는 표지석으로서, 약화된 유림사회를 결집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전통을 보호,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향교의 무형적 상징인 석전제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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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향교 석전
2016-04-22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서는 약 650여년의 시간을 지낸 전주향교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주향교의 건립은 고려 공민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현재는 기록이 남아 있지않기 때문에 이는 단지 추측일 뿐 정확한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른 기록을 통해 전주향교가 경기전이 세워진 1410년(태동11)전에 이미 건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주향교는 대설위(大設位)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성전에 5성위와 공문 10철, 송조 6현을 모셨고, 동,서무에는 공자 문하 72현, 한,당,송,원나라의 22현, 우리나라 18현의 선위를 모셨습니다. 현재 전주향교에서는 유교경전 등의 강습, 전통문화전승, 사회교화 등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실시해 지역사회에 이바지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활동은 향교의 본래적 의미를 전승하고, 현재까지 지속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향교(鄕校)는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기 이전 각 지역에 설립된 관학 기관으로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문화를 선도하던 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현대화를 거치면서 전통이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향교 역시 지난 과거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향교는 지역의 오랜 전통을 보여주는 표지석으로서, 약화된 유림사회를 결집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전통을 보호,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향교의 무형적 상징인 석전제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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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향교 석전
2016-04-22
인천향교의 정확한 건립연도와 건립배경에 관한 자료가 없어 정확한 건립시대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1406년(태종6) 향교의 성전이 중수되었음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1406년이전에 창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인천향교는 1636년(인조14)에 병자호란으로 인한 화재로 흔적 없이 타버려 위패만 근근히 봉안하여 오던 중 1701년 다시 한 번 중수하였습니다. 인천향교는 조선시대 중설위 향교로서 대성전에 5성과 공문 10철, 송조6현 등 21위와 동서무에 우리나라 18현을 모두 합하여 39위를 봉안하고 있었으나 1975년 공문 10철과 송6현의 위패를 매안하고 동서무에 있던 우리나라 18현을 대성전으로 승차하여 현재는 23위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 향교(鄕校)는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기 이전 각 지역에 설립된 관학 기관으로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문화를 선도하던 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현대화를 거치면서 전통이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향교 역시 지난 과거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향교는 지역의 오랜 전통을 보여주는 표지석으로서, 약화된 유림사회를 결집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전통을 보호,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향교의 무형적 상징인 석전제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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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향교 석전
2016-04-22
상주향교의 건립과 관련된 옛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상주가 경주,진주와 함께 고려 12목에 속하였고, 이후에도 계수관으로서의 위상을 가졌던 지역이므로 비슷한 시기에 향교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당시 향교건물이 일시적으로 북한군의 거처로 사용되고, 이후에는 난민 수용소가 되어 완전히 폐쇄될 지경에 이르는 등 많은 풍파와 수난을 겪었지만 1952년 동재를 대성전으로 정하고 위패를 봉안한 후 석전을 봉행하기 시작한 뒤, 현재는 우리나라 18현과 송유 2현 등 20위를 복위하여 대성전에 봉안하고 제반 예기와 의물을 정비하여 향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향교(鄕校)는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기 이전 각 지역에 설립된 관학 기관으로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문화를 선도하던 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현대화를 거치면서 전통이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향교 역시 지난 과거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향교는 지역의 오랜 전통을 보여주는 표지석으로서, 약화된 유림사회를 결집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전통을 보호,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향교의 무형적 상징인 석전제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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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향교 석전
2016-04-22
밀양향교는 교통의 밀성손씨 집성촌 마을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영남지방에서는 경주향교, 진주향교와 함께 큰 규모를 자랑하는 향교였습니다. 점차 사회가 급변하고 발전하면서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유교적 가치는 점점 퇴색되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학 교육 기관의 중심에 있던 향교는 그 위상이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그러나 약 50-60여년 전 밀양향교 유림들의 주체로 명륜학원(現 밀성학원)을 설치하고 중,고등학교 재단의 형태로 4대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석전의 의미를 고취하고 유교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을 위하여 『대성전,원사 향사교육』, 『제사축문집』, 『향교교육교재』 등을 만들어 지역의 유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밀양향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향교(鄕校)는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기 이전 각 지역에 설립된 관학 기관으로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문화를 선도하던 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현대화를 거치면서 전통이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향교 역시 지난 과거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향교는 지역의 오랜 전통을 보여주는 표지석으로서, 약화된 유림사회를 결집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전통을 보호,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향교의 무형적 상징인 석전제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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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향교 석전
2016-04-22
12목의 하나였던 나주에도 경학박사와 의학박사 1명씩이 각각 파견되었으며, 992년(성종11)의 조치에 따라 서재와 학사 등 학교시설이 갖추어졌습니다. 나주 어느지역에 학교시설이 마련되었는지, 교육의 대상은 누구였으며 교육 내용은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구체적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989년(성종8)에 나주목의 경학박사인 전보인이 교육에 큰 효과를 거두어 포사을 받았던 것으로 미루어 활발한 교육이 실시되었을 것을 집작할 수 있습니다. 향교가 가지고 있던 선현봉사의 기능은 지금까지도 나주향교 유림들의 노력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삭망분향때나 춘추의 석전이 가까워지면 반드시 명륜당에 모여 예행연습을 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제례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향교(鄕校)는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기 이전 각 지역에 설립된 관학 기관으로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문화를 선도하던 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현대화를 거치면서 전통이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향교 역시 지난 과거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향교는 지역의 오랜 전통을 보여주는 표지석으로서, 약화된 유림사회를 결집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전통을 보호,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향교의 무형적 상징인 석전제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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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향교 석전
2016-04-22
공주향교 건물은 충남 공주시 교동에 위치하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향교 건물의 관리와 전반적인 운영 및 교육활동들의 중추적인 담당은 공주향교 유림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공주향교는 충청도 지역의 수교(首校)로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활발히 운영되었던 중요한 위치의 향교였습니다. 현재는 시대변화에 따른 교육기관의 변화로 조선시대 향교가 가지고 있었던 영향력이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공주 유림들의 관심과 노력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주향교는 중설위 향교로서 현재 서울의 성균관 위패 봉안 신위와 같이 39위를 봉안하는 것에 반해, 공주향교는 아직도 대성전에 5성(五聖),공문(孔門)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의 신위를 모시고, 동묘(동무), 서묘(서무)에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신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향교(鄕校)는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기 이전 각 지역에 설립된 관학 기관으로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문화를 선도하던 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현대화를 거치면서 전통이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향교 역시 지난 과거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향교는 지역의 오랜 전통을 보여주는 표지석으로서, 약화된 유림사회를 결집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전통을 보호,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향교의 무형적 상징인 석전제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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