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공연ㆍ예술

전체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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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말(아니리), 몸짓(너름새)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을 말한다.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영조 30년(1754)에 유진한이 지은 춘향가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숙종(재위 1674∼1720) 이전에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고, 조선 전기 문헌에 보이는 광대소학지희(廣大笑謔之戱)가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판소리가 본래 여러 가지 놀이와 함께 판놀음으로 공연되던 것이어서 판놀음이 있었던 신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판소리는 느린 진양조, 중모리, 보통 빠른 중중모리, 휘모리 등 극적 내용에 따라 느리고 빠른 장단으로 구성된다. 고수의 반주는 소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면서 “얼씨구”, “좋다”, “으이”, “그렇지” 등의 감탄사를 내는데, 이를 추임새라고 한다.
  판소리는 순조(재위 1800∼1834) 무렵부터 판소리 8명창이라 하여 권삼득, 송흥록, 모흥갑, 염계달, 고수관, 신만엽 등이 유명하였는데 이들에 의해 장단과 곡조가 오늘날과 같이 발전하였고, 동편제(전라도 동북지역), 서편제(전라도 서남지역), 중고제(경기도·충청도) 등 지역에 따라 나뉜다.
  판소리가 발생할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하여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그 수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성없는 이야기 소재와 소리가 점차 길어지면서 충, 효, 의리,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만이 보다 예술적인 음악으로 가다듬어져 판소리 다섯마당으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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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오광대
국가무형문화재 제6호
  오광대는 남부지역(낙동강 서쪽지역)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로, 초계 밤마리 마을 장터에서 놀던 광대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부산 동래, 수영 지방에서는 들놀음, 통영, 고성, 가산 지방에서는 오광대로 불린다. ‘오광대’란 다섯 광대 또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오행설(五行說)에서 유래된 오(五)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오행설 의견이 유력하다. 전에는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해졌으나 현재는 봄, 가을에 오락적인 놀이로 공연되고 있다.
  통영오광대는 통영지역에서 행해지던 놀이로, 100여 년 전 마을사람들이 마산의 창원오광대를 보고 와서 시작한 것이라고도 하고 원래 창원 구읍(지금의 마산시) 사람으로 창원오광대를 놀던 이화선(李化善)이 충무시에 이사와서 전파한 것이라고도 전한다.
  놀이는 문둥탈·풍자탈·영노탈·농창탈·포수탈의 5마당으로 구성된다. 문둥이·말뚝이·원양반·둘째양반·홍백양반·비틀양반·곰보양반·검정양반·조리중·팔선녀·영노·영농양반·할미·제자각시·상좌·봉사·상주·포수·몽돌이·사자·담비 등 총 31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민중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심하며 파계승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서인지 약한 편이다. 가장 특징있는 춤은 문둥이춤이다. 이 춤은 문둥이의 생애와 한을 표현하고 있으며 꽹과리가 주도하는 반주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으로 지역적인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통영오광대는 우리나라 남부 지역 탈춤 전통을 잘 보여주는 탈놀이로서 서민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는 전통적인 마당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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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오광대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오광대는 남부지역(낙동강 서쪽지역)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로, 초계 밤마리 마을 장터에서 놀던 광대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광대’란 다섯 광대 또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오행설(五行說)에서 유래된 오(五)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오행설 의견이 유력하다. 전에는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해졌으나 현재는 봄, 가을에 오락적인 놀이로 공연되고 있다.
  고성오광대는 1910년경에 남촌파(南村派) 서민들이 통영오광대를 보고 오광대놀이를 시작하였고, 그 뒤에 창원오광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탈놀이로 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놀이는 문둥이춤·오광대춤·중춤·비비춤·제밀주춤의 5마당으로 구성된다. 문둥이·말뚝이·원양반·청제양반·적제양반·백제양반·흑제양반·홍백양반·종가도령·비비·비비양반·중·각시·영감·할미·제밀주·마당쇠 등 총 1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고성오광대 놀이의 내용은 민중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신랄하지만 파계승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서인지 약한 편이다.
  고성오광대는 다른 지방의 오광대에 비해 놀이의 앞뒤에 오방신장춤, 사자춤 같은 귀신 쫓는 의식춤이 없고, 극채색(極彩色)을 많이 쓰며 오락성이 강한 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성오광대의 탈은 예전에는 종이로 만든 탈이 특색이었으나, 근래에는 오동나무로 만든 나무탈을 사용하기도 하고 종이탈, 바가지탈을 쓰기도 한다. 주된 춤사위는 덧뵈기(탈놀이)춤인데 배역에 따라 인물의 성격이 춤으로 잘 표현되어 있고, 반주음악으로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타악기가 주로 사용된다.
  고성오광대는 서민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는 전통적인 마당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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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농악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였고, 이는 평택농악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평택 근처의 청룡사(靑龍寺)는 일찍부터 사당패들의 근거지가 되어 조선 말기에는 그들의 농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래서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인 동시에 걸립패농악(중들이 꽹과리치면서 염불하고 동냥하는 일)의 성격을 갖는다.
  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로는 꽹과리, 징, 북, 버꾸, 호적, 나팔이 있다. 편성은 영기수(令旗手), 농기수(農旗手), 나팔수, 호적수, 상쇠, 부쇠, 종쇠, 징수 1, 징수 2, 설장구, 부장구, 상장구, 북, 상버꾸, 부버꾸, 종버꾸, 꼬리버꾸, 상무동, 종무동, 삼무동, 칠무동, 중애(사미), 양반으로 되어있다. 농악수들은 옛날 군졸들이 입었던 의상을 입고 그 위에 색띠를 걸쳐 매며 머리에는 벙거지나 고깔을 쓴다. 악기에 있어서 징과 북이 타지역에 비하여 적으며 소고와 법고의 구별이 없다. 가락의 가림새가 분명하며 노래굿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또한 길군악칠채는 경기농악에만 보이는 장단으로 평택농악의 길군악칠채는 다른 지역과 구분된다.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의 소박한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공연성이 뛰어난 남사당패 예인들의 전문적인 연희를 받아들여 복합적으로 구성한 수준 높은 농악이며, 무동놀이(어른의 목말을 타고 아이가 춤추는 놀이)가 특히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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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농악
국가무형문화재 제11-3호
  이리농악은 익산(옛 이리)지방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우도농악에 속한다. 익산시 새실마을은 예로부터 마을농악이 왕성했고, 김제·정읍 등지에서 전문적인 농악을 배워온 사람들을 받아들여 오늘과 같은 높은 수준의 농악단을 배출할 수 있었다.
  이리농악은 용기, 농기, 쇄납, 나팔, 사물(쇠4, 징2, 북2, 장고4), 법고(불교의식에서 쓰는 작은 북), 잡색(양반, 대포수, 조리중, 창부, 각시, 무동)으로 편성된다. 농악수들은 치배 또는 군총이라고도 하는데 흰 바지 저고리에 색동달린 반소매의 검은색 쇠옷이나 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며 머리에는 상모와 고깔을 쓴다. 쇠가락에는 일체, 이채, 삼채, 외마치질굿, 풍류굿, 오채질굿, 좌질굿, 양산도가락, 호호굿, 오방진가락 등이 있다. 판굿의 절차는 인사굿, 오체질굿(오른쪽으로 돈다 하여 우질굿), 좌질굿, 풍류굿, 양산도, 긴매도지(미지기 : 쇠와 장구가 마주보고 전진후퇴), 삼방진굿, 방울진굿, 호호굿, 달라치기, 짧은매도지, 짝드름, 일광놀이, 구정놀이(개인놀이), 기(旗)쓸기 순서이다.
  상쇠의 부포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되어 있으며,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가 많은 편이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자주 쓰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형 연주되어 리듬이 다채롭다. 풍류굿, 덩덕궁이(삼채굿)에서는 악절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
  이리농악은 마을사회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하는 민속예술로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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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악
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
강릉농악은 강원도 태백산맥 동쪽에 전승되어 오는 대표적인 영동농악의 하나로 농경생활을 흉내내어 재현하는 농사풀이가 있기 때문에 농사풀이농악이라고도 한다. 유래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강릉농악은 농기, 쇄납(날라리), 꽹과리, 징, 북, 장구, 소고, 법고(불교의식 때 쓰는 작은북) 및 무동(사내아이)으로 편성된다. 연주자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홍·청·황의 삼색띠를 두르고 무동들은 여러 가지 색깔이 섞인 옷을 입는다. 강릉농악에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3∼4일간 농악대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농악과 고사를 나는 지신밟기, 마을의 공동 기금을 걷기 위해 걸립패로 꾸며 농악을 하는 걸립농악, 모심기와 김매기 등을 할 때 하는 김매기농악, 김매기가 끝난 후 질 먹을 때 하는 질먹기, 건립굿이나 봄철 화전놀이 때 큰 마당에서 벌이는 마당굿이 있다. 타지역에 없는 달맞이굿(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 횃불놀이, 놋다리밟기(젊은 여자들이 1명을 뽑아 자신들의 허리 위로 걸어가게 하는 놀이)가 있고, 두레농악이라 할 수 있는 김매기농악과 질먹기, 길놀이농악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강릉농악은 단체적인 놀이를 위주로 하여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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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필봉농악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임실 필봉농악은 필봉리에 전승되고 있는 농악으로 호남좌도농악에 속한다. 필봉마을에는 예로부터 당산굿·마당밟기 정도의 단순한 농악이 전승되어 왔는데, 오늘날과 같은 높은 수준이 된 것은 1920년경에 상쇠(패의 지도자 격으로 꽹과리를 가장 잘 치는 사람) 박학삼을 마을로 초빙하여 그의 농악을 배우면서부터라고 한다.
  필봉농악의 농악수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는데, 쇠잡이(꽹과리나 징을 치는 사람)만 상모(털이나 줄이 달린 농악에서 쓰는 모자)를 쓰며 나머지는 고깔을 쓴다. 농기, 용기(그릇), 영기(깃발), 긴 쇠나발, 사물(꽹과리, 징, 북, 장구), 법고(불교의식 때 쓰는 작은 북), 잡색(대포수, 창부<남자광대>, 양반, 조리중<삼태기를 맨 중>, 쇠채만 든 농구, 각시, 화동과 무동<사내아이>)으로 편성된다.
  농악의 종류에는 섣달 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풍물을 치며 집집마다 도는 것), 당산제굿(당산에서 마을을 위해 제사지낼 때 농악을 치며 노는 것), 보름굿과 징검다리에서 치는 노디굿, 걸궁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이 있다. 이 중에서 판굿은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 뒷굿에 편성되는 영산가락은 가진영산, 다드래기영산(상쇠가 부포시범을 보임), 미지기영산, 재넘기영산(상쇠가 쇠시범을 보임) 및 군영놀이영산(개인놀이와 비슷함)으로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느린 편이다.
  임실 필봉농악은 쇠가락(농악의 대표격인 꽹과리 가락)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가락이 힘차고 씩씩하며, 개개인의 기교보다 단체의 화합과 단결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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